Good bye, halcyon days...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독서론.
책을 읽으면서 흔히들 생각해보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 탕누어
옮긴이: 김태성, 김영화


책의 세계는 바다와 같이 넓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의 운과 선택에 의존하여 국부적으로 책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단정치 못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p.42

단정치 못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행한 일인가? 이에 대한 답과 관계없이, 좋지 못한 책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 군것질이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처럼 좋지 못한 책을 만났을 때 그것이 더 즐거울 때도 있다. 더 좋은 책을 만날 시간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이며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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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오면 도적을 맞고, 도적이 가면 관리를 맞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무거운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사람들은 책을 읽으려 할 리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들 앞에 읽을 만한 책이 없다면 그에게는 독서를 시작할 어떤 동기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p.51

독서는 동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행위를 하고 있는 동안 이를 지속해야하는 이유를 항상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는 즐거움'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동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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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다. 자주 듣는 흔한 미스터리이자 편리한 방법이다. 특히 우리가 처한 오늘날의 세상, 생명이 치열한 경쟁, 심지어 달리기 경주로 묘사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p.169

우리는 정말 그렇게 바쁜 걸까?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솔직히 말해서 절대 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바쁘다는 가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살면서 타인을 위해 부득이 해야 하는 것, 타인에 대한 책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p.170

따라서 시간의 절대적인 결핍을 의미하기보다 가치의 선택과 배열을 의미한다. p.171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공언하는 것은 사실 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책 한권 읽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 귀중한 시간을 책을 읽는데 남겨줄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그 뿐이다. p.172

정신의 풍요로움을 포기할만큼의 일이 얼마나 있을 까? 물론 자신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책 한권 읽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이틀의 야근을 무시하고 이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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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불을 땔 때 장작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을 때는 데 장작이 필요하듯 생각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두 시간을 태울 수 있는 장작과 3분밖에 타지 못하는 성냥개비는 당연히 같지 않다. 그리고 사유의 재료를 공급하는 것은 미리 저장해 두었던 기억이다. p.201

마르케스의 말로 이 장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하다. 마르케스는 자신은 기록을 하지 않고, 신체 이외의 기억 보조 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글을 썼다고 말한다. 또다시 문자에 의지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사유와 긴밀히 연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는 엄격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여과의 과정이자 글을 쓰는 데 있어서의 선택 기준이 된다. 결국 진실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자신의 믿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것'만을 쓴다. 그래서 마르케시는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쓸 가치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p.221

기억해야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은 억지로 기억하지 않아도 책이 좋고,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면, 문장의 형태일 수도 있고, 무형으로 기억에 그리고 생활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하고 있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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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다면 동일한 작가(물론 충분히 훌륭한 작가여야 한다)의 작품을 한 권도 빼놓지않고 다 읽는 완정한 독서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p.270

한 작가의 작품을 한 권 더 읽을 때마다 독서의 진전은 1+1의 산술적인 증가로 그치지 않는다.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추가 효과가 뒤따른다는 것만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p.270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예전에 작가 '귀욤 뮈소'의 전체 작품을 발매 순으로 모두 읽어본 적이 있다. 비슷한 플롯의 반복으로 몇몇의 작품은 연속으로 읽는 동안 답답했다.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오히려 고역이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플롯의 반복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형식의 이야기를 했을 때는 매우 즐거웠다. 즐거움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지만, 위 주장을 반박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아니면 작가 '귀욤 뮈소'가 충분히 훌륭한 작가로 분류하기에는 부족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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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녀에게 아낌없이 책을 사주진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의 유년엔 너무 많은 일,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p.306

여기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에게 어릴 때 부터 너무 많은 양의 학습을 요구하는 형태가 올바른 것인가? 부모가 고민하고 원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가? 등에 대해서.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방향은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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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나는 재미없지만 꼭 필요한 것을 억지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엄숙하고 재미없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앞서 인정한 바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학교 교육과 교과서가 있는 것이고, 굳이 헌법으로 보장할 필요도 없이 이에 복종하며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학교 교육과 교과서의 숙명적인 보수성 및 안전성에 대한 요구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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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우려해 마지않는 것은 다음 세대가 갈수록 더 책 읽기를 원치 않고 갈수록 더 문자의 풍요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게 되는 것이다.

완벽히 공감한다. '종이책'은 그 자체로 완벽한 발명품이고, 사고를 반복하고 그를 위한 기반을 위해 책 읽기를 원하고 원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유하지만, 이성적인가? 에 대한 개인적인 답변은 '이성은 극히 작은 부분만 사용되고 있다' 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이렇게 하라.' 책을 읽으면서 꾸지람을 듣는 것 같았다. 지금 회사로 이직하면서 중단된 독서 생활을 다시 이어가고 있는 요즘 책을 읽고픈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재미있는 내용의 책은 전혀 아니지만 마음은 너무 즐거웠던 책이였다. 절묘하게 맞춰진 회사생활을 향한 고민의 결론에 따른 야근중단, 덕분에 생겨난 책 읽을 시간에 미풍이 불고 책을 즐기고 있다.



e.riny

e.riny

I know what I know nothing.